아침 출근할 때마다 팟캐스트에 있는 콘텐츠들을 듣곤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것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란 코너죠.
이렇게 듣기 시작한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이 분의 내용들을 들으면서 나름 깨우친 것들이 꽤 많습니다.
딱히 불교를 종교로 삼고 있지도 않는데, 이 분의 말씀은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범용적인 사고로 이야기를 풀어주시기에 타 종교를 가진 분들도 종종 듣는 모습입니다.
즉문즉설 卽問卽說, 바로 묻고 바로 답함.
법륜스님은 사회에 도움을 주고 일종의 자기 수련의 방법으로 이 대화를 이어간다고 합니다. 방송에서도 종종 소개되어서 이 분의 명성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십니다. 이미 수많은 질문과 답변을 오갔기에 제 생각으로는 세상의 모든 고민들이 여기에 담겨 있지 않을까 할 정도네요. 세계의 평화문제부터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까지, 노인의 자녀문제부터 아이의 부모의 간섭에 대한 불만까지... 정말 별의별 질문들이 다 있었고, 스님은 여기에 눈높이에 맞춰 답변을 합니다.
간혹 스님을 비판하는 글들도 보긴 했는데, 이 분의 말씀에 대중들이 공감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시간까지 진행할 수 있었을까요? 정확한 데이터를 못 찾았는데 최소 10년은 넘은 거 같습니다.
즉문즉설에 대해 법륜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속상하거나, 와이프와 싸웠거나, 일이 잘 풀릴 때 이 분의 말씀을 듣고 다시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도움을 받곤 했습니다. 해외에 살다 보니 지인이 한국보다는 많지 않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사람이 그리 없는 상황에서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이 분이 해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심지어는 마케팅 공부도 도와줬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이야기했었던, 분류의 개념을 이 분의 말씀을 통해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던 상황도 있었네요. 무엇이 무엇의 범주에 속한다는 개념들이 실은 자기 입장에 따라 관점에 따라 바뀐다는 이야기를 여러 예를 통해서 이야기해주셨죠. 또한, 탁자 위의 컵에 들은 물을 가지고 관점을 이야기한다거나. (일반적인 내용이지만,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 그 깊이가 깊어집니다.) 앞산과 뒷산의 이야기를 가져와서 나와 이웃마을의 사람들이 같은 산을 다르게 부른다는, 결국은 모두 같은 산이고 그 산은 그냥 거기 있을 뿐이라는... 이런 이야기가 가벼운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본질이 거기에 다 있습니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나는 말씀이 있네요.
우리는 꼭 뭔가의 삶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산속에서 마주친 다람쥐처럼 그냥 사는 것이다라는 말씀. 오히려 너무 많은 생각으로 삶의 방향에 혼란을 줄 수도 있는 세상인데, 간결하게 그렇게 태어 낳고 그렇게 죽는 인간의 삶 속에서 지금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스스로에게 과연 무엇이 행복인지를 따져 묻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불교는 세 가지의 영역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종교로서의 불교. 종교는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믿고, 기원하는 그런 패턴을 가지고 있죠. 시험 잘 봐 달라고 기도를 하거나 자신의 현실이나 사후의 생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기원의 행위'입니다.
두 번째는 철학으로서의 불교. 불교철학이란 말도 있죠. 사물의 이치를 분석하고 깨우치려 하는 논리적인 사고 영역으로서의 불교입니다. 그 역사가 오래되었던 만큼 불교의 철학적 사고는 매우 깊죠. 연구를 해볼 가치가 있는 부분입니다.
세 번째는 수행으로서의 불교. 사회생활을 하거나 스스로에게 있어 부딪치는 문제들에 있어 자신을 돌아보고 개선하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죠. 수행을 통해서 거듭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불교라고 해도 다른 모습으로 불릴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불교에 매력을 느낍니다.
맹목적인 믿음을 경계하는 저이기에 '설명이 가능한' 이야기들에 끌리는 거죠.
그렇다고 기독교나 타 종교가 틀리다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는 '믿음'이라는 기본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기에 어떤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못 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영역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죠.
법륜스님의 세상에 대한 해석은 불교의 교리와 철학, 그리고 자기 수양을 통해서 얻은 통찰이겠죠.
그의 말속에서 새로운 관점과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특히나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은 계속 배워야 하는 부분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종교에 귀의해서 살아간다고 해서 우리와 동떨어진 삶을 산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경험이 없어 이들의 삶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세상에서 같은 사건사고들을 접하고 동시대의 사람들 속에서 비슷한 감정적 교류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시대를 산다는 것은 인류 역사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 그 시대의 이슈와 질문들 속에서 같은 고민을 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하기에 종교인들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고, 특별한 도덕적 기준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인데 직업을 '종교인'으로 선택해서 살아가고 있고, 그들의 직업군의 윤리와 도덕적 규범적 생활을 강요받고 그리고 이를 이행하고 사는 사람들인 거죠.
그래서 간혹 규범을 어기거나 도덕적 기준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그런 틀을 가져야 하는 '종교인'이기에 일반인들 보단 다른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고요, 이 길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기에 외람된 이야기지만 '직업'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최근 기사에서 윤석렬 비행기가 떨어지라고 기도했다는 성직자가 언론에 실렸습니다. 윤석렬이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를 떠나서 성직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어떤 목사는 사람들을 선동하면서 정치적 발언을 '직업'삼아 일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옳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전 개인적으로 법륜스님이 속세의 잣대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이 시대에 성직자가 필요한 이유는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예전에 법륜스님이 말한 '사물을 합리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다섯 가지 공부'라는 내용을 옮겨 적어 봅니다.
근데 먼저 왜 합리적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죠. 편향된 사고는 그릇된 관점을 가져옵니다. 어쩌면 세상의 많은 반목이 이런 '생각'에서 시작하는 거죠.
과거 중국의 노자는 둘 사이의 경계境界를 걸어가듯이 살아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경계를 걸어가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치우치지 않으려면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균형을 잡으려면 미세한 근육이 긴장하면서 움직여야 하듯이 우리의 생각도 '긴장'을 필요로 하죠. 이를 '통찰'이라는 말로 표현할 도 있습니다.
한번 어떤 말씀인지 같이 보시죠.
법륜스님의 사물을 합리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다섯 가지 공부
(물질, 생명, 정신, 문명, 마음)
1) 물질에 대한 이해 : 물질의 기원, 우주의 생성, 원인, 물질의 근본 요소인 입자 등에 대한 기본 상식.
2) 물질에 의해 이루어진 생명에 대한 이해 :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근원. 유전자. 물질로 이루어졌지만 '생명현상'이라는 독특한 현상이 나타남. 진화에서의 생명의 기원은?
3) 생명을 기반으로 하는 '정신작용'에 대한 이해 :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등 정신작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내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 이 현상은 왜 일어나고 어떻게 일어나는가? 생물로서 인간종은 어떻게 언제쯤 출현했고, 정신작용 즉 '문명'이란 어떻게 일어나는가?
4) 각 지역의 문명발달사(인류문화사)의 이해 : 인류의 문명은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역사와 신화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각 지역의 문명은 어떤 변화의 과정을 가져왔고 현재에 이르렀는가?
5) 마음의 작용에 대한 이해 : 마음은 어디서 일어나는가? 나의 문제인가? 상대방의 문제인가? 이를 알아야 자신을 다스릴 수 있고, 편향성을 벗어날 수 있음. 사고의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공부.
세상에는 정말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더 잘 알고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는 혜안을 얻고자 공부를 합니다.
법륜스님의 이 다섯 가지 공부 내용을 접하고서는 전 큰 스승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독서를 해나간다면 나름 큰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죠. 또한 법륜스님뿐이 아닌 다른 분야의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분들의 말씀을 듣다 보면 비슷한 패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근저에 깔린 지식은 바로 이런 내용들이 아닌가 보이고요. 종교인으로 생활하시는 분들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내용입니다.
예전에 성철스님이 과학에 있어 그렇게 밝으셨다고 하던데, 모두 이런 공부들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점수를 좀 더 얻기 위해 공부하는 지금의 우리 청소년들이 세상의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궁금증을 가지고 진짜 제대로 된 공부를 하기를 바랍니다.
아직 경험을 못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즉문즉설을 경험해 보시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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